5장 인간의 구원

 

인간의 구속에 대한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의 흘리신 피를 통해서 성취된다. (1) 구원의 조건: 구원은 하나님께 향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향한 믿음을 통해 받는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믿음을 통한 은혜로 인해 의롭게 됨으로, 영생의 희망에 따라 인간은 하나님의 상속인이 된다( 24:47; 3:3; 10:13-15; 2:8; 2:11; 3:3-7). (2) 구원의 증거: 구원의 내적 증거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언이다( 8:16).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외적 증거는 의로운 삶과 진정한 거룩한 삶이다( 4:24; 2:12).

[하나님의성회 근본교리진술 제5]

 

1.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구약과 신약에서 구속이란 단어는 가격을 지불하고 사온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예수는 구속자이며, 그의 속죄의 일은 구속으로 나타났다( 20:28; 5:9; 14:3, 4; 3:13; 4:5; 2:14; 벧전 1:18). 구약에 구속에 관한 규례가 있는데 남의 종이 된 사람을 그 친족들이 속량해 줄 수 있다( 25:47-49). 이 법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팔고 자신을 종으로 팔고 난 후 어느 때라도 다음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그를 속량해 주는 조건하에서 그의 땅을 돌려받고 그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그 조건은 첫째로 판 자의 친척이어야 하고, 둘째로 판 자를 구속하기 원해야 하며, 셋째로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형체를 취하심으로 우리와 같게 되셨으며, 우리를 구속하시기 원하셨으며, 그리고 그 대가를 지불하셨는데 그것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구속할 수 없으며, 인간이 다른 인간을 구속할 능력도 없다. 구속의 대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값을 치룰 수 없다. 시편 기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비싸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49:7, 8)라고 기록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속자가 필요한 것이다. 예수가 온 것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로 오셨다( 20:28).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영원히 가치있는 희생을 하셨다.

 

하나님은 예수의 구속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구원을 준비하신다. 타락한 죄인의 상태에서 인류가 구속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흘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말미암는 것이다. 구원은 값을 지불하고 받은 것이므로 귀히 여겨야 한다. 바울은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 20)고 했다. 예수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16:26)고 말씀하셨다.

 

 

 

2. 구원의 조건과 결과

 

하나님의성회는 교리 진술에서 구원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원의 조건은 하나님께 향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향한 믿음을 통해 받는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믿음을 통한 은혜로 인해 의롭게 됨으로, 영생의 희망에 따라 인간은 하나님의 상속인이 된다( 24:47; 3:3; 10:9-13; 2:8; 3:3-7). 이 진술에서 언급한 내용 - (1) 하나님께 향한 회개 (2) 주 예수 그리스도께 향한 믿음 (3) 믿음을 통해 은혜로 의롭게 됨 (4) 중생의 씻음 (5) 성령의 새롭게 하심 (6)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함 - 을 살펴본다면 (1)(2)(3)(4)(5)는 구원에 적용되는 조건이라고 볼 수 있으며 (6)은 구원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모두를 구원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는 구원의 과정에 대하여 순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구원의 교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나님께 향한 회개

 

구약에서 회개란 돌이키다(슈브)라는 뜻이다. 즉 죄의 언행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뜻이다. 신약에서 회개(메타노이아)란 마음의 바꿈, 사고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죄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생명을 얻는 회개( 11:18)를 의미한다. 동사(메타노에오)목적이나 의도를 바꾸다, 과거에 지은 죄를 미워함으로 진정한 마음으로 자신을 고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회개는 과거에 대한 방향 전환과 미래에 대한 방향 수정을 뜻하는 개념으로서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영적 변화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예수는 그의 사역을 회개의 메시지로 시작하셨다(1:15). 예수의 메시지의 핵심은 회개에의 부르심이고, 하나님에게로 복귀를 시사한다. 예수는 산상설교에서 인간 속에 죄의 내재성을 지적하시고 하나님께로 복귀하는 회개를 촉구하시면서,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하셨다( 5:22, 28, 29).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함이라고 언급했으며( 5:32), 죄인이 돌이켜 회개할 때 새로운 생명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3:2).


초대교회의 설교에 있어서 회개는 그 기초가 되었다( 2:38; 3:19). 사람의 악한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은 종말적 메시지의 목적이다( 2:37).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의 계시 이외에 인간에게 죄를 확인케 하는 방법은 없다( 5:30-32; 2:4).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믿음은 마음으로서의 동의요, 의지로서의 동의이다. 그리고 지적인 의미로서의 믿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해 계시된 진리를 아는 것이다. 그러나 지적인 믿음은 구원으로 인도하는데 충분치 못하다. 복음을 단지 지적인 동의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라어의 믿다(피스튜오)라는 단어는 하나의 전치사가 동반되어 사용되므로 그 단어의 의미보다 관계의 의미를 내포한다. 요한복음 3 16절에서 믿다(피스튜오)라는 단어가 전치사(에이스)와 함께 사용되면서 그 의미가 믿는 자와 믿는 자의 대상이 한 일체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신뢰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믿음은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것이다. 믿음은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바쳐진 희생제물로 믿고 의지하게 한다. 또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를 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에 대해 전인격적인 관심과 삶을 포함한다.

 

믿음이란 수동적으로 받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속에 내재하고 있다( 3:17). 믿음은 의지력을 포함하고 있으며 모든 선한 일의 원동력이다. 믿음은 진리를 선택하고 추구하는 것이며(살후 2:12), 하나님의 의에 순복하는 것이다( 10:3). 믿음은 그리스도께 순종하므로 온전해진다.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됨 (이신칭의)

 

인간은 의롭게 해줄 수 없는 율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의가 필요하다. 이 의는 하나님의 의이며, 하나님이 부여해준 의이다. 이 의는 하나님의 선물인데, 인간이 의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의의 선물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그 대답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이다.

 

칭의는 믿음으로 얻게 된 용납의 상태를 의미한다( 5:2). 이러한 용납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다( 1:17; 3:21, 22). 칭의란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부여된 그리스도의 의로 인해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이다. 신자들은 과거의 죄악과 현재의 불완전에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확실한 지위를 보장받은 것이다. 칭의는 하나님의 판결이므로 어느 누구도 이것을 반박하거나 부인할 수 없다( 8:34). 국가의 관료가 범인을 사면시켜줄 수 있으나, 법을 위반하지 않았던 상태로 되돌려줄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둘 다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과거의 허물을 모두 씻어주시고, 과거에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자처럼 취급하신다. 인간적으로 볼 때, 사면 받은 범죄자는 의로운 자 또는 좋은 자로 취급받거나 대우받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보기에도 좋다고 여기신다.

 

중생의 씻음

 

중생 또는 거듭남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기본 요건이며, 물과 성령이 거기에 관여됨을 알 수 있다. 물이란 회개를 의미하는 죄의 씻음을 말하며, 성령으로 난 것이란 성령으로 영의 생명을 얻게 된 것을 말한다. 니고데모는 육신의 생명만 있었고 영의 생명이 없었기 때문에 거듭나야 한다고 예수는 말했다( 3:3-7).

 

중생의 씻음( 3:5)이란 비록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다시 범죄할 수 있으므로 중생한 후에도 씻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이 이미 중생한 자들이지만 회개의 필요성을 제시하셨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너희는] 온몸이 깨끗하니라( 13:10). 죄의 씻음( 22:16)은 중생의 씻음과 다르다. 죄의 씻음은 죄를 씻어 중생하게 하는 씻음을 말하며, 중생의 씻음은 중생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중에 저지른 그의 죄를 씻음을 말한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

 

거듭난 사람의 영은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필요하다. 중생은 신자에게 영의 생명이 새롭게 주어졌음을 말한다. 이 생명을 받은 후에는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중생의 씻음의 단계를 지나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의 단계로 나가야 한다. 신자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12:2). 변화를 받는 것은 위로부터 새롭게 하심을 입어야 가능하다. 거듭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성령은 우리가 새롭게 되도록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구원의 완성 때까지 그리스도인의 온 생애를 통하여 지속되어야 한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란 성령의 도우심을 덧입은 성도가 매일 경험하는 성화의 과정을 가리킨다. 사실 신자에게 있어서 거듭남은 일회적인 사건이지만, 성화는 일생을 통해 지속되어야 할 일이다. 성화의 길을 온전히 걷기 위해서는 성령의 절대적인 후원과 동행이 필요하다. 신자를 사랑하시며, 깊이 이해하시는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를 통해 성숙한 영의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음: 구원의 결과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는 상속인이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8:16). 자녀가 아버지의 것을 유업으로 상속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그의 자녀가 상속받을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의 자녀를 위해 예비하신 상속을 살펴보자.

 

(1) 영생( 19:29), 영생의 복(벧전 3:9; 참조 1:4)

(2) 유업의 상( 3:24; 6:7, 8; 6:35)

(3) 그리스도의 나라( 5:5)

(4)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8:17)

(5) 그리스도의 영광의 찬송( 1:13, 14)

(6) 하나님의 나라( 25:34; 5:5)

(7)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21:2-7)

 

3. 구원의 증거

 

(1) 내적 증거: 성령의 직접적인 증언

 

바울은 성령이 구원의 증거를 직접 증언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언보다 더 확실한 구원의 증거는 없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8:16).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은밀히 알게 하시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언으로 신자는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 신자는 성령의 증언을 동의하고 수용한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는 것처럼(고전 12:3),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8:15). 성령은 신자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증언한다.

 

(2) 외적증거: 의로운 삶과 거룩한 삶

 

구원받은 자의 외적 증거는 의로운 삶과 거룩한 삶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의로운 삶은 어떤 것인가? 의로운 삶이란 올바르게 사는 것을 말하는데, 즉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면서 사는 것을 말한다. 노아의 삶은 의로운 삶이다. 노아는 의인이요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6:9). 요셉의 의로운 생활도 이와 같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1:19, 24). 의로운 자는 의를 행하는 자이며( 5:18; 요일 3:12), 의를 행하므로 의로운 자임을 증명한다(요일 3:7).

 

거룩한 삶이란 구별되게 사는 것을 말하는데,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것과 죄악으로부터 구별되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바치는 생활을 말한다. 거룩한 삶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의 삶을 말한다(벧전 2:5).

 

예수는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사셨으며(3:4), 우리가 의롭고 거룩하게 살도록 만드셨다(고전 6:11). 베드로는 부르심에 합당한 거룩한 생활을 하라고 하면서 예수같이 거룩하게 살라고 권면한다(벧전 1:13-16). 그러므로 신자는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삶은 인생의 끝날까지 지속되어야 함을 성경은 권고한다.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22:11).

 

4. 구원의 입장

 

구원의 입장에 대해 하나님의성회는 다음 네 가지 점을 강조한다. (1)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벧전 3:9; 3:16; 10:11-13). (2) 구원은 믿음으로 얻고, 믿음으로 유지된다( 2:8; 3:9; 10:38; 벧전 1:5; 3:28; 2:20, 21). (3) 지속적인 죄는 신자의 믿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요일 1:8; 3:8; 3:5-8; 고전 3:1-3; 3:12-14; 12:1). (4) 신자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거부할 때 상실된다( 17:12; 10:38; 딤전 4:1; 5:12, 15; 요일 5:16; 벧후 2:20; 10:26, 27; 6:4-6).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주어졌다

 

복음의 메시지 가운데 누구든지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이 요한복음 3 16절과 로마서 10:13절에 나타난다. 이것은 구원의 보편성을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의지가 믿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구원의 비보편성을 주장하는 그룹이 있다. 이들은 인간의 책임을 간과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을 너무 강조한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멸망받기로 예정되어 있는가? 혹은 어떤 사람이 선택받은 사람인가?라는 것이다. 이 그룹은 로마서 9-11장에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배제될 것이고, 구원받을 자에 관한 선택은 인간의 결의와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수행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 진술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9:11, 15, 16).

 

그러나 이 본문이 선택에 관해서 가르치는 의미를 고려해 볼 때 인간의 의지가 그의 선택에 포함되리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야곱은 그가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선택되었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야곱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예지하신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이 진리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보내는 베드로의 서신에서 잘 드러난다. 이 신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택하심을 받은(벧전 1:1, 2)것으로 인정되었다. 이와 동일한 진리가 로마서 829절에 진술되어 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실 조건을 미리 정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예지에 근거해서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다( 1:4).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그의 주권으로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는 구원의 계획을 준비하셨다. 이 계획 속에서 인간의 의지가 고려된다. 구원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응하는 사람에게 가능하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고, 믿음으로 유지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그는 믿음을 통해 구원받는다. 그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그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긍휼에 자신을 맡기고,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인다. 그는 믿음으로 그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3:9). 그는 믿음으로 자신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며, 이 지식이 그에게 평화와 기쁨을 준다.

 

그런데 신자의 신분과 신자의 상태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의 신분은 그가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다. 그는 의롭게 되어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있다. 신자의 상태, 즉 신자 안에서 그리스도의 의의 작용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것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성령과 협력함으로써 얻어지는 영적 성장과 점진적 성화를 포함한다(벧후 1:5-7; 6:12, 13; 8:13; 3:1-5). 성숙해 가는 과정 속에서 신자는 승리뿐만 아니라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믿음이 확고한 한 그의 안전은 결코 의심되지 않는다.

 

신자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하고 잇음을 알기 때문에 결코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의심할 필요없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을 행사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강조하는 동시에, 신자의 자유의지와 책임에 대해서도 분명히 강조해 둘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로부터 선택의 능력을 빼앗지 않으신다. 믿음을 지속하는 것이 신자의 책임이다.

 

결론적으로 성도의 견인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구원받음과 구원의 유지에도 오직 믿음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보장은 신자가 그리스도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을 지속하는 한 신자에게 아들의 의를 전가시키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

 

지속적인 죄는 신자의 믿음에 악영향을 미친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짓는다는 것과 죄를 지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의지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요일 1:8, 9; 2:1). 이와 반면에, 그리스도인이 죄의 삶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다시 말해서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한 그는 습관적으로 죄를 지을 수 없다(요일 3:8, 9). 죄를 범하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은 죄를 범하지 않으며, 습관적으로 계속 죄를 짓지 않는다. 그는 마귀의 자녀처럼 계속 죄를 지을 수 없다. 그 대신에 그리스도인은 지속적인 죄가 그의 믿음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를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동일한 과거의 죄를 계속 지을 수는 없다.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신자는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이전의 습관과 버릇은 이제 부자연스럽고, 마음의 새로운 욕구에 반대된다.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계속 죄를 지을 수 없나니](요일 3:9)라고 말했다. 믿음으로 우리의 것이 된 새로운 성품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성품에는 죄가 낯선 것이다. 이러므로 옛 성품이 일시적으로 예기치 않게 주도권을 다시 잡을 경우, 새로워진 존재는 이러한 부자연스러운 침입에 대해 대적하게 된다. 그래서 즉시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된다.

 

신자는 죄를 가볍게 취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는 감히 하나님의 은혜를 죄에 대한 면책권으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라고 바울이 질문했다( 6:1). 이에 대한 답변은 절대적인 부정이다. 바울은 지속적인 죄가 신자의 믿음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가르친다. 지속적인 죄는 주제넘고 고압적인 태도를 만들고, 반역의 증거가 된다( 15:30, 31). 반역은 신뢰나 믿음의 순종과 반대되는 것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부지런히 살피면서( 12:15)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성경의 권고는 다음과 같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

 

 

 

구원은 그리스도를 거부할 때 상실된다

 

믿음의 상실은 영혼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자의 구원이 자신의 의로써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구원이 그 행동으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지만, 신자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불신앙으로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죄와 불신앙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죄는 믿음을 위태롭게 하며, 믿음의 상실은 신분의 상실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312-14절이 이를 증명한다. 이 책의 기록자는 형제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하는 불신앙에 대해서 경고했다. 그는 불신앙의 원인이 되는 죄의 유혹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믿음을 제거해 버리면 더 이상 신분이 유지될 수 없다. 그렇기때문에 성경은 신자들에게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3:12)라고 권고한다.

 

하나님은 누구도 쉽게 놓아주지 않으신다( 10:21). 바울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동일한 원리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성령의 끊임없는 충고를 무시해서 구세주이신 예수를 거부할 정도에 이르게 된다면 버림을 받을 수도 있다. 일시적으로 시험을 받아서 믿음에서 떨어지는 일은 가능하다( 8:13). 믿음이 약한 형제가 멸망하는 일도 가능하다(고전 8:11).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도 그 책에서 제거되는 일도 가능하다( 22:19).

 

어떤 사람이 구세주이신 예수로부터 이미 돌아섰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의 판단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에 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입장이 확고하다. 만약 하나님이 탕자가 돌아오게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도 이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전혀 지워버리지 않으셨는데도 너무나 자주 사람들은 한 개인을 지워버리는 일을 한다. 성경은 구원이 박탈당할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성령의 간청에 응답하고자 하는 어떤 사람에게도 희망을 부여하는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는다.

 

 

 

연구문제

 

1. 왜 예수께서 구속하셔야 했는가?

2. 구원의 조건은 무엇인가?

3. 구원의 결과는 무엇인가?

4. 왜 구원의 외적증거가 중요한가?

5. 하나님의성회의 구원의 입장은 예지예정론인가 예정론(무조건 선택)인가?

6. 예지예정론과 예정론은 무엇이 서로 다른가?

7.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분리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