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 이해

                                                                                                                      

 

 

                                                                                                                 김은철 목사

                                                                                                                 아가페순복음교회

                                                                                                                 영국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PhD)

                                                                                                                 신학국장

 

  

성령충만은 오순절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이며, 비오순절교회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논제일 것이다. 신약에서 성령충만이란 단어가 15번 사용되었다.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4(1:15, 41, 67; 4:1), 사도행전에서 10(2:4; 4:8, 31; 6:3, 5; 7:55; 9:17; 11:24; 13:9; 13:52) 사용했으며,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1(5:18) 사용했다. 헬라어 본문을 살펴보면 성령충만이란 단어에서 충만을 세 개의 다른 단어 즉, 동사 충만하게 하다(플레도, pletho)충만하게 하다(플레로오, pleroo), 그리고 형용사 충만한(플레레스, pleres)으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위의 관련된 본문에서 동사는 수동태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다, 형용사로 사용된 본문은 성령으로 충만한으로 표기되었다. 그럼 성령충만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우선 성령충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1) 누가가 플레도(pletho)를 사용하여 성령충만을 나타낸 의미는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성령충만이 있은 후 후속적으로 성령의 역사가 다섯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방언으로 나타난다. 오순절날에 모인 사도들과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다른 방언으로 말했다( 2:4). 둘째, 복음증거로 나타난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담대하게 말씀을 전했다( 4:8, 31; cf. 2:14). 셋째, 권능을 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울은 복음증거를 방해하는 악한 자를 꾸짖고 고통을 주었다( 13:9). 넷째,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것으로 나타난다. 세례요한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은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것이며( 1:15),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도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것이었다( 9:17). 다섯째, 예언으로 나타난다.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마리아의 예수잉태에 대해 예언했으며( 1:41), 사가랴는 성령충만을 받아 세례요한의 사역에 대해 예언했다( 1:67).

 

(2) 누가는 플레로오(pleroo)를 사용하여 성령의 지속적인 충만을 강조한다. 바울도 성령의 지속적인 충만을 강조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전도하고 난 후 핍박 중에도 성령의 지속적인 충만에 있었다( 13:52; cf. 1:6).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했는데( 5:18), 현재형의 명령은 지속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성령의 지속적인 충만을 받으라고 말한 것이다. 성령의 지속적인 충만은 위의 다섯가지 성령의 역사(방언, 복음증거, 권능행함, 하나님의 사역, 예언)를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성령의 지속적인 충만으로 다섯가지 성령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다. 한편, 플레도(pletho)를 사용한 성령충만의 의미는 성령이 사역의 필요성을 느낄 때마다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하셔서 그의 사역을 하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복음증거를 하게 된 경우가 세번 연속적으로 언급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렇게 이해한다.

 

(3) 누가는 형용사 플레레스(pleres)를 사용하므로 성령의 충만한 상태( 6:3, 5; 7:55; 11:24; 4:1;)를 말하고 있다. 그럼 누가가 말하는 성령의 충만한 상태는 무슨 의미로 말하는 것인가? 다음과 같은 네가지가 포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성령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며 그리고 실제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 스데반은 다섯가지 성령의 역사를 나타냈으며( 6:8-7:60), 빌립도 다섯가지 성령의 역사를 나타냈다( 8:5-13; 8:26-40; 21:8-9). 둘째, 부가적인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 스데반은 하늘의 영광을 보았으며( 7:55), 빌립은 성령에 의한 순간이동을 체험했으며( 8:39), 바나바는 큰 부흥을 일으켰다( 11:24). 셋째, 성령충만이 믿음의 충만 또는 지혜의 충만으로 나타난다. 일곱 사람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였고(6:3),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다(11:24)고 기록되어있다. 넷째, 성령이 예수의 사역에 깊이 관여한다. 성령은 예수를 광야로 인도하시고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게 하시고( 4:1),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4:14). 심지어 성령의 임하심이 예수의 사역의 시작되는 것이라고 그의 사역선언(mission statement)에 기록되었다( 4:18).

 

(4) 위에서 세가지 의미의 성령충만을 언급했는데,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를 알아보자. 같은 점은 첫째, 성령충만은 수혜자가 체험하는 것으로써 이전에 성령의 임재가 수혜자에게 있었음을 전제한다. 둘째, 성령이 주체이고 수혜자는 수동적이다. , 성령이 수혜자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이다. 세째, 성령충만으로 인한 사역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된다. 그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첫째, 플레도(pletho)를 사용한 성령충만은 다섯가지 성령의 역사로 나타난 반면에, 플레로오(pleroo)를 사용한 성령충만의 의미는 성령의 지속적인 충만으로써 다섯가지 성령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핍박 중에도 성령의 기쁨이 있음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사역을 위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이지만, 후자는 사역을 위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 뿐 만 아니라 삶의 정황에서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이다. 둘째, 플레도(pletho)를 사용한 성령충만이란 다른 사람을 위한, 다른 사람에게 한 것인 반면에, 플레로오(pleroo)를 사용한 성령충만이란 다른 사람을 위한, 다른 사람에게 한 것 뿐 만 아니라 수혜자 자신을 위해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것이 다르다. 셋째, 플레레스(pleres)를 사용한 성령충만은 플레도(pletho) 플레로오(pleroo)를 사용한 성령충만보다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부가적인 성령의 역사, 믿음의 은사 혹은 지혜의 은사, 성령의 깊은 간여가 추가되어 있다.

 

(5) 지금까지 누가가 말하는 성령충만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그럼 성령충만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성령충만의 정의가 무엇인가를 알아보자. 플레도(pletho)를 사용한 성령충만은 성령의 임재로 다섯가지 성령의 역사 혹은 한가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며, 플레로오(pleroo)를 사용한 성령충만은 성령의 임재로 다섯가지 성령의 역사 혹은 한가지 성령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과 핍박 중에도 성령의 기쁨이 있음을 말하며, 플레레스(pleres)를 사용한 성령충만은 성령의 임재로 다섯가지 성령의 역사 혹은 한가지 성령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 부가적인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 그리고 믿음의 은사 혹은 지혜의 은사를 얻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가지를 종합하여 결론을 내린다면, 일반적으로 성령충만이란 성령의 임재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혜자가 성령충만을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만일 수혜자를 통해 다섯가지 성령의 역사 혹은 한가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면, 그래서 성령의 역사에 합당한 결과가 있다면, 그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수혜자를 통해 다섯가지 성령의 역사 혹은 한가지 성령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핍박 중에도 성령의 기쁨이 있다면, 그는 성령의 지속적인 충만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수혜자를 통해 다섯가지 성령의 역사 혹은 한가지 성령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부가적인 성령의 역사하심이 나타난다면, 그리고 믿음의 은사 혹은 지혜의 은사가 나타난다면, 그는 성령의 충만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